第 3 講 主題 講義 (2)
安寧 하세요? 幸福들 하십니까? 幸福하십니까, 하면 精神차려 집니까? 그 다음엔 무슨 質問이 나갈까요? 여러 分들 무엇으로 幸福하십니까, 하는 質問이 나오겠지요? 자, 여러 分들, 거듭 반갑습니다. 지난 時間은 主 題 講義 1부라 했습니다. 오늘은 主題 講義제 2 부입니다.
人生이 무엇입니까? 人生이란 묻고 답하는 過程이다. 이렇게 人生을 풀어도 괜찮게 들리지요? 그러면 人生이란 묻고 답하는 過程이다, 그렇게 해놓고 한番 여러分들의 人生을 돌아보세요. 여러 分들의 時間은 每日 무엇인가를 묻고 있고 그 물음에 답하는 過程으로 엮어지고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工夫를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묻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잘 하겠지 하고 답합니다. 또 돈을 잘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지 합니다. 그리고 마음공부촌에 因緣을 맺었더니 每日 問道 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묻지 않습니까? 그리곤 每日 그것에 對해 답하고 하잖아요. 또 只今 내가 하나 물으려고 하는 겁니다. 人生은 묻고 답하는 過程이라고 했지만 人生은 또 다른 말로도 풀 수 있습니다.
人生이란 어느 곳에 臨해 있는 過程입니다. 이것을 어느 곳에 임해있다고 해서 臨場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人生을 臨場過 程이라고 풉니다. 여러分들은 시도 때도 없이 恒常 어느 場 에 臨해 있어요. 只今 여러分들은 어느 場에 臨해 있습니까? 同事攝서울 센터 講義실에 임해 있습니다. 그래서 임해있는 이 時間이 只今 여러 分들의 人生입니다. 여러分들은 家庭 空間에서 가족들과 임해있는 瞬間 이 있고, 職場에서 팀원들과 그 場에 臨해있는 瞬間도 있고, 親舊 랑 찻집에 임해있는 瞬間도 있습니다. 여러分들의 人生 에는 수 없는 장, 장, 장이 펼쳐져 있게 되고 그 場에 여러分들은 臨한다, 存在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때 그 때 어떤 마음으로 그 場에 臨해있는 것이 좋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그 場에 臨해 있는 게 좋겠는가 하는 質問을 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習慣的으로 그냥 그 場에 臨해 있는 겁니다. 習慣的으로 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은 됩니다. 그러나 조금 意圖的으로 있는 게 좋겠어요? 習慣대로 있는 게 좋겠어요? 정답은 정해져 있는 건 아닙니다. 境遇 에 따라서는 習慣대로 있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意圖的으로 그 場에 臨해 있는 게 좋아요. 意圖的으로 임할 줄을 모르고 習慣的으로 임하는 것에 익어져 있는 사람들은 習慣대로 人生을 살게 되는 겁니다. 習慣대로 사는 人生. 이것은 정말 믿을 없는 人生입니다. 隨分覺을 넘어선 사람은 習慣대로 살아도 된다는 인증서가 하늘로부터 내려오게 됩니다. 그러나 隨分覺 에 이르기 전까지는 習慣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意圖的으로 살아야 합니다. 意圖的으로 사는 것을 加行이라고 합니다.
자, 다시 설문하겠습니다. 여러分들은 시도 때도 없이 어떤 場에 臨하시는데 어떤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同事攝의 勸 奬 답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두 번째 勸奬 답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場을 천국으로 만들리라, 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이라면 家庭이라는 이 空間을 천국으로 만들리라, 내가 어느 職場의 팀원이라면 이 職場을 천국으로 만들리라. 내가 學校 先生님이라면 내 學校를 천국으로 만들리라. 내가 地球인 이라고 하면 이 地球촌을 천국을 만들리라. 내가 宇宙인 이라고 하면 내 宇宙를 천국으로 만들리라, 하는 겁니다. 천국이란 아주 아주 좋은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느 곳에서든 아 아주 아주 좋은 世上을 만들리라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임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임하는 사람은 그 장에서 엉뚱한 짓을 덜 하지요.
여러分들은 어떻습니까? 여러分들이 계신 家庭 空間, 職場 空間 이라는 人間 關係의 空間을 늘 좋은 자리로 엮어 오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問題 아 아들이 있다고 해 봅시다. 그 아들이 이런 것에 깨어나서 정말 그럴 必要있겠구나 하는 信念을 갖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그 아들이 집에서 말썽을 피우겠습니까?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어야 우리 집이 천국이 될 것 아닌가. 어떻게 하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까? 내 형, 내 동생을 기쁘게 해주어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이 臨場신념이重要 합니다. 이것은 目的 價値觀 에 相應하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우리 모두의 幸福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幸福 》이라는 目的 價値觀이 어느程度 自己 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면 場에 臨했을 때 自然스럽게 이 臨場신념이 딱 서있어야 합니다. 나로 인하여 이 곳이 더 좋은 자리가 되도록 하겠다, 하는 이 마음이 좋지 않습니까? 이것이 두 번째 勸奬 답입니다.
그러면 첫 번 째 臨場신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는 이 장의 주인이다.’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 臨場 信念이 必 要할까요? 내가 이 場에 있으니까 나의 아이덴티티를 제대로 할 必要가 있습니다. 나는 어떤 存在입니까? 나는 이 장의 주인이니까 臨場신념 2 番으로 쑥 自然스럽게 건너가게 됩니다. 이 장의 주인이란 말은 이 장을 幸福하게 만드는데 責任 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주인은 自然히 臨場신념 2 番으로 가게 됩니다. 1번과 2 番이 한 문장으로 엮어지면 《이 장의 주인인 나는 이 장을 천국으로 만들리라》 하게 됩니다. 이것이 人生 全部이지 않을까요? 그 場 에 臨한 자가 그 장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人生의 全部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 더 質問이 나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장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장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선 내가 具體的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이렇게 묻게 되겠지요. 이 물음에 對한 날카로운 답을 가질 때 앞에 있었던 臨場신념이 꽃을 활짝 피우고 결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臨場신념은 우리들 價値觀 體系에서 體, 몸통에 해당되고, 具體的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은 用에 해당됩니다. 이것이 體 와 用입니다. 모든 世上에 存在 하는 것들은 체와 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질과 現象에서 본질은 체요 現象은 용입니다. 마음가짐은 체요 마음가짐이 行動으로 나오게 되면 그것이 용입니다. 全部 체와 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장의 주인인 나는 이 장을 천국으로 만들리라 하는 마음가짐은 體이고 이 체가 밖으로 具體的으로 드러나는 것, 그것이 用입니다. 이 체와 용이 하나로 딱 엮어지면 훌륭한 人生 관이 되겠지요.
자, 그러면 具體的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을 내가 셋으로 整理해 내었는데 여러 分 들이 곧이 들을런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을 그렇게 整理하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그 답을 찾아내어 명쾌하게 整理하는데 10년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10년 걸린 작품을 맨입에 그냥 내놓기가 쉽겠습니까? 事實 그것이 아까워서 꺼내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只今은 막 꺼내서 펑펑 내주고 있습니다.
여러分들이 그 답을 훤히 알고 있다고 해서 이빨 쑤시면서 “맞아, 그거야. 그거.” 그러지말고 그 답을 다시 한 번 꼭꼭 씹어보도록 하세요. 꼭꼭 씹으면서 “정말 그렇다. 정말 그렇다. 정말 그렇다.” 하는 마음이 여러分 속에 익어 들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익어 들어야 익어 든 그 마음이 여러 分들의 삶으로 온전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거, 좋은 거야 하면서 땡 끝내고는 다른 것을 찾아 가지 말고 좋은 그 價値觀을 거듭 反 複, 反複해서 씹도록 하십시오.
자, 이 10년짜리를 復習합시다. 내가 10년 걸려서 이 장을 천국으로 만들기 爲해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이면 되겠구나 하고 整理하면서 1번으로 끌어냈던 것은 《일》이었습니다. 무엇인가 하는 것, 역할인데 처음에는 일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장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착착착 하는 것, 그래서 일 하나를 잡아냈습니다. 나중에 가서 그 일을 作善으로 바꿨습니다. 作善. 다른 두 개 單語가 全部 두 자로 되어 있어서 세 번 째도 일이라 하지 말고 作善이라고 하자 하여 作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잡아냈는데 어떤 共同體에 가봤더니 모든 사람들이 自己 일을 착착착 다 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 이거 훌륭한 이상 共同體다. 천국 共同體다.” 했습니다. 그런데 일만 열심히 하면서 이 사람들이 옆의 親舊 들 하고는 막 싸웁니다. 그래서 “아하, 일만 잘해서는 안 되는구나, 옆의 사람하고 關係가 좋아야 되겠구나. 사이가 좋아야겠구나.” 했습니다. 卽, 和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和合이란 것이 없이 일만 잘 하게 되면 일 잘한 것으로 해서 얻어낸 성과는 있을지 모르나, 옆 사람하고 티격태격하는 완전 소모전을 펴면서 地獄을 만들어 버릴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正말로 옆 사람과의 友好 關係, 和 合, 친하게 되는 것이 必要하다 해서 일과 和合개념을 뽑아냈습니다. 일과 和合. 이 두 가지로 完成이다 했습니다. 일과 和合 으로 全部이겠다는 감이 들었는데, 바로 이어서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일하는 모습이 좋고 關係 和合 도 좋은데 그 사람이 담배 한대 피우면서 혼자 있을 때 이 마음속이 평화롭지 않다고 하면 어찌할 것인가 하는 問題였습니다.
이래서 修心문제가 떠올랐습니다. 마음 管理를 잘해서 혼자 있든지, 關係를 하고 있든지 이 마음이 평화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평화롭고, 關係가 좋고, 하는 일을 착착 잘 한다면? 그것은 정말 오케이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亦是 修心 을 通해서 오니까, 修心, 和合 , 作善그래서 그 答은 作善, 和合, 修心으로 되었는데 哲學적 體系는 안에서부터 나가는 것이 좋으니까 후일에 修心, 和合 , 作善으로 했습니다.
修心, 和合, 作善에 앞에서 말한 臨場기초 信念 두 가지가 어우러져 正體, 大願, 修心 , 和合, 作善의 다섯 가지가 된 것입니다. 주인인 나 하는 이 《나》 問題는 만만한 問題 가 아닙니다. 臨場기초신념인 1번인 나는 주인이다 하는 이것은 나에 對한 存在 규정의 한 자락입니다. 내 存在 규정을 어떻게 해야 좋으냐 하는 것은 重大한 主題이기 때문에 價値觀 體系 에서 이 나를 《 正體 》라는 이름으로 첫번째로 마크한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 모두의 幸福이라는 目的가치관을 드러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을 理想 共同體로, 천국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2 番이란 말이에요. 理想 共同體를 만들리라. 하는 큰 꿈, 큰 이상을 가져야 한다 해서 2 番을 大願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臨場기초 信念을 둘로 整理 하면 正體, 大願이지요. 그 臨場기초 信 念인 正體, 大願을 구체화 시키는 모습이 修心, 和合 , 作善입니다. 그래서 正體, 大願, 修心, 和合, 作善을 삶의 5대 原理라 이름 붙이고 있고, 또 共同體論으로 보면 理想共同體 五要가 됩니다. 그래서 요사이는 理想 共同體 五要 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삶의 5대 原理는 처음부터 써왔던 이름입니다. 삶의 5대 原理이며 理想 共同體 五要인 正體, 大願, 修心, 和合, 作善은 앞의 2가지인 正體와 大願은 體가 되고, 10년 만에 답을 도출해내었다고 하는 뒤의 3가지는 用이 됩니다. 同事攝의 一般課程 은 이 五要를 分析하고 統合하고 整理해가지고 5박6일 동안 修練 을 하는 거예요. 同事攝一般 課程은 五要를 깨닫고 그것을 實習 하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5대 原理라고 하는 이것을 손동작으로 한 번 해봅시다. 이렇게 두 팔을 앞 쪽으로 둥그렇게 해서 손 끝을 가슴에 살짝 대고 한番 해봐요. 자 于先, 나는, 해 봅시다. 그리고 大願은 우리 모두의 幸福이라 해보세요. 나는 우리 모두의 幸福을 위하여 안으로 修心 하고 和合하고, 作善한다. 이것이 人生의 全部입니다. 여러分 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分들이 24 時間살고 있는 모든 국면 국면은 이 다섯 가지 중의 어디에 있게 됩니다. 家庭주부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五要 중에서 어떤 걸 하고 있어요? 作善을 하고 있습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마인드 속에 내가 주부 역할 잘 해가지고 내 家庭을 천국으로 만들리라. 하면 그것은 어디에 들어가요? 大願에 해당됩니다. 나는 이러한 어머니로서, 이런 家庭주부로서, 나 괜찮지 않아? 라고 생각하면 어디에 들어갑니까? 正體 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男便이 벗어놓은 옷에서 냄새가 너무 나서 마음이 팍 상했어. 그런데 아이고 내가 男便에게 성질내고 있네 하면서 마음을 살짝 돌렸다하면 어디에 들어갑니까? 修心하고 있습니다. 男便이 밤 11시에 들어오니깐 성질내고 한마디 하고 싶어.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아이고 12시 안에 들어와서 고맙네요. 어서 들어오세요. 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면 어디에 들어갑니까? 和合입니다. 그래서 이런 式 으로 모든 국면은 正體, 大願, 修心, 和合, 作善이라고 하는 범주에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여러分이 同事攝에서 正體, 大願, 修心, 和合, 作善을 구체화시킨다면 횡재입니다. 여러分 들이 여러分들의 自身을 사랑한다면 여러 分들의 人生에 對한 관점을 날카롭고 좋게 가져야 할 것 아닙니까? 人生에 對한 관점을 스스로 좋게 가져보려고 努力해 보자니 다른 일로 너무 바빠. 그러니까 할 수 없이 人生관의 問題를 大家에게 속전속결로 배우는 것이 것이 좋습니다. 배우지 않고 혼자 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分들은 운이 좋아서 同事攝 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大家인 龍陀스님이 평생을 갈고 닦고, 연찬하고, 思索하고 했던 삶의 5대 原理와 거기에 相應하는 수많은 메뉴들을 5박6일에 싹뚝 삼켜 버릴 수가 있으니, 여러分들은 복둥이들입니다. 祝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