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5 講 修心 1. 煩惱構造
오늘 講義는 修心입니다. 講義에 들어가기 前 에 五 要 暝想을 한 번 해볼까요? “나는 모두의 幸 福을 위하여 修心 하고 和 合하고 作善한다.” 다시 한 번 해봅시다. “천하의 주인인 이 일물은 무한 宇宙에 있는 모든 存 在의 幸福 解 脫을 위하여 안으로 修心잘 해서 마음 천국 이루고 밖으로 和合잘 해서 關係 천국 이루고 나아가 作善잘 하여 世上 천국 이루리라.” 이것이 人生입니다. 모두의 幸福 을 爲 해서 修心하고 和 合하고 作善하는 것. 이것이 人生입니다. 이것 잘 하면 人生성공한 것이고, 잘 못하면 실패 쪽입니다. 자, 이 時間에는 안으로 修心잘 해서 마음 천국 이룬다고 한 그 修心 이 1, 2, 3, 4로 엮어집니다.
修心 1 은 煩惱 構造입니다. 여러分들, 修 心이라 하면 마음을 닦는다, 그런 槪念이 第 1감으로 딱 오지요? 마음을 닦는다. 그러면 마음이 있고 마음속에 닦아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닦아 내야 되니까 肯 定的인 것보다는 否定 的인 무언가가 마음에 있다고 前提하는 말 같은데요? 否定 的인 그것을 닦아 내버린다. 修 心이란 그런 式의 槪念 이 아닙니까? 그러면 여러 分들이 修心에 들어간다 하면 于先 마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은 어떻습니까? 밖에는 무한으로 열린 宇宙가 있습니다. 그런데 안에 있는 이 마음이야말로 밖의 外宇宙보다 훨씬 더 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外宇宙라고 하는 것도 알고 보면 內宇 宙입니다. 깨닫고 보면 내 意識 空間의 部分집합으로 外 宇宙가 있는 法입니다. 깨달아 가면 갈수록 그렇습니다. 깨닫기 전에는 마음이 이 속에 있는 것 같고, 宇宙는 저 쪽에 있는 것 같은 감이 들지만, 깨달아 가면 갈수록 밖에 있다고 생각 됐던 저 外宇宙라는 거대한 宇宙도 내 마음의 部分 집합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이 오게 됩니다.
깨달음은 깨달은 후에 논하기로 하고 于先 外宇宙, 內宇宙 로 나누어 놓고 봅시다. 內宇宙 와 같은 것이 마음입니다. 그러면 이 內宇宙를 보면 一 旦 意識 空 間이 있게 됩니다. 여러分 들이 눈을 감고 가만히 안으로 있어 보세요. 그러면 그 속에, 이 마음속에 意識 空間이 이렇게 잡힙니다. 처음에는 이것도 잘 안 잡힙니다. 그런데 여러分들이 이 쪽에 關心 을 기울이고 속을 들여다보면 꼭 맑은 어항 속에서 노는 고기들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이 내 마음속이 점점 어떤 式으로 具體的으로 잡혀옵니다. 具體的으로 잡혀오기 전에는 여러分들이 相當 히 努力을 해도 무엇을 내 마음속 이라고 할까, 이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초기 現象입니다. 工夫가 어느程度 들어갔다 하면 外宇 宙하늘에 별이 있고 산하대기가 있고 이렇게 구경하듯이 內宇 宙도 구경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內宇宙를 보면 意 識 空間이 하나 있고, 意 識 空間 에 多 樣한 念體들이 있어요. 이 念 體라고 하는 것은 내 意識 空 間에 내가 만들어 놓은 내 관념의 파편들, 감정의 파편들, 그런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念 體중에는 그럴싸하게 괜찮은 것도 있지만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念體 도 있습니다. 修心제1 講義 가장 基礎的인 槪 念은 내 意識 空 間에 있는 이 念體들을 지워버린다는 것입니다. 修心은 마음을 管理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念體중에서 있으면 좋을 만한 念體 를 내 마음속에 장착하는 것도 修心에 들어갑니다. 우리의 意 識 空間엔 多 樣한 念體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있으면 좋을 만한 念體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念體 는 그것이 있으면 내가 불행해집니다. 그러니까 그런 念體들은 없어져야 합니다. 意識 空間에는 플러스에 해당이 되는 念體도 있고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否定 的인 念體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念體를 否定 念體라 한다면 이 時間 에 工夫할 것은 그 否定 念體지우기입니다. 이 否定 念體를 지워버릴 것 같으면 내 意識 空間에는 무엇이 남겠습니까? 텅 빈 意 識 空間과 있으면 좋을 念 體만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이 이제 제대로 된 것입니다. 이런 모양새만 된다고 하면 이것이 부처이고 보살입니다. 그러면 부처나 보살을 가로막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하면 씻어 낼까 하는 것이 이 時間 의 主題 입니다. 그러기 爲해서 이런 것들이 어떻게 해서 形成 되게 되는가를 工夫하는 것입니다. 이런 否定 念體들을 煩惱라 하는데 煩惱가 어떤 歷史를 가지고, 어떤 式으로 意識 空 間에 存在하는가 하는 煩 惱 構造를 理解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念體가 전혀 끼지 않는 狀態 의 意識 空間을 하나 상상해 볼 수가 있습니다. 于先 只今 은 상상으로밖에 접근이 안 됩니다. 그런 意識 空 間을 念體 以 前, 槪念 以 前이라고 그럽니다. 왜냐? 槪念을 붙었다 하게 되면 이미 그 槪念은 念體, 내 생각덩어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이 始作되기 以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以前을 槪 念 以前이라고 합니다. 槪 念 以前을 선명히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이 말이 形而上學的으로 느껴지고, 무엇을 말하는 걸까 하고 갑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狀態에서는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하, 槪念이 끼기 以前, 경험이 끼기 以前의 意識 狀態가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상상을 하십시오. 그런데 이것은 경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경험하기 전에는 그냥 상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나를 낳자마자 사라져서 어머니가 없었는데 오늘 그 어머니와 상봉하게 된다 하면 어머니 얼굴이 떠오를까요? 상상이 될까요? 상상이 된다고 하고 어머니를 딱 보았을 때, 아이고, 이 분이 나의 어머니 였구나 그럴 것 아닙니까? 그러니 여러 分들이 경험하기 以前에는 상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只今 이야기는 이 槪念 以前으로 있던 내 意識 속에 어떻게 해서 이런 念體들이 끼게 되었는가,特 히 否定 念體가 어떻게 끼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 저 否定 念體 라는 벌레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보도록 합시다. 자, 槪念 以前으로 있던 이것이 첫 墜落을 始作 하게 됩니다. 첫 墜落이 무엇이겠습니까? 實 體 思考가 첫 墜 落입니다. 實體사고 라는 말이 무슨 뜻이지요? 이 몸뚱이를 《나》라고 하면서 이것이 《나》라는 實體라고 주장하기 始作 한다는 것입니다. 또 相對方을 《너》라고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첩’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 그것이 實體시입니다. 나, 너, 이것, 저것, 그것, I, you, he, she, it 全部, 그 모든 것들이 實體 思考입니다.
그러면 實體 思考놀음을 해야 될까요? 안 해야 될까요? 해야 됩니다. 해야 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하기는 해야 되지요. 그런데 그와 同時에 이것이 毒物로 機能하게 됩니다. 이것이 毒物로 機能한다면 좋겠어요? 안 좋겠어요? 안 좋습니다. 그런데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기는 해야 됩니다. 先生님이 學 校에 가서 先生님 노릇을 하려면 槪念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쓰면서 이것이 毒物로 작용한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써야 됩니까? 안 써야 됩니까? 쓰면서 毒物로 機能하지 않도록만 하면 됩니다. 이것은 앞으로 여러分들이 工 夫를 하면서 解決해야 할 일입니다.
槪念 以前에서 實 體 思考로 딱 전락을 합니다. 그러면 나, 너, 이것, 저것이 다 있다 하면서 국어사전에 있는 그 單語 갯수보다 훨씬 많은 갯수로 實體가 나열됩니다. 이 實體 思考를 하게 되었다 하면 이것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墜落 을 더 해서 價値 思考 가 됩니다. 그런데 價値 思考 가 되었다 하면 이 가치에 相應하는 欲求가 일어나게 됩니다. 欲求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欲 求는 어떻게 됩니까? 내가 그 가치를所有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肯定가치 일 때는 그것을 끌어오려고 하고 否定的인 가치일 때는 밀어내려고 합니다. 끌어오는 것을 성취하려 하고 밀어내는 것을 성취하려는 것입니다. 結局 이 欲求란 성취의 歷史가 前提된 槪 念입니다.
그러면 이 欲求가 생겼다 하면 그것이 마음대로 될까요? 欲求 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안 되면 어떻습니까? 속이 상하지요? 속이 상하는 그것을 憤怒라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인가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이 가치가 있어서 欲求했는데 마음대로 안 되니까 憤怒가 일어납니다. 이 實體 사고, 가치사고, 欲求, 憤怒 이것이 몇 초 사이에 지나가겠어요? 일 초 사이에, 몇 초 사이에 열두 번 지나가 버립니다. 무엇인가가 가치가 있다고 前提 해 놓고 欲求하고 마음대로 안 되니까 憤 怒가 일어난다. 그러면 이것을 하루에 몇 번程度 反複하겠습니까? 수 없이 反複 합니다. 무엇인가에 對해서 欲求 憤怒, 欲求 憤 怒하고 또 무엇인가에 대해 欲求 憤怒, 欲求 憤 怒합니다. 같은 아이템을 놓고 欲求 憤怒를 反複하기도 하고 아이템을 바꾸어 가면서 수 없는 欲求 憤怒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欲求 憤怒를 反複하면서 여기에서 만들어지는 思考 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이 不滿 思考입니다. 이 不滿 思考가 무엇일까요? 원하는데 마음대로 안 되면 속상함이 일어나고 또 원하는데 안 돼, 또 또 원하는데 또 안 돼. 그럴 때 내 속에서는 어떤 思 考 방식이 생길까요? 아이고 나는 해도 해도 되지 않네. 나는 正말로 滿足스럽지를 못하네, 합니다. 狀況 狀 況이 全部 滿足스럽지 못하다 하는 不滿 思考 가 形成 되는 것입니다.
A라는 가치에 對해서 원하는데 안 되서 속이 상해. 아이고, 이걸 가지려고 하는데 너무너무 안 되네 하게 되면 그 가치는 더 빛날까요? 아니면 줄어들까요? 더욱더 가치 있게 보입니다. 그래서 不滿 思考 는 價値 思考를 더 부추기는 것입니다. 價値 思考 가 부추겨지면 이것을 實體라고 여기는 實 體 思考는 어떻게 될까요? 그 實體는 더 강력하게 에너지를 받게 됩니다. 그렇게 에너지를 받게 되면 다시 반대로 순환이 되면서 이 가치는 더 빛나 보입니다. 게다가 빛나게 보이면 보일수록 欲求 성취가 마음대로 되냐 하면 더 안 돼. 또 欲 求, 憤怒하게 되고 그러면 不 滿 思考가 강화되고, 不 滿 思考기 강화되면 價 値 思考강화, 實 體 思考 가 강화되고, 또 逆 順으로 實體 思 考, 價値 思 考, 불만사고가 강화, 강화, 강화, 강화해서 이 순환 고리가 강화, 강화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意 識 속에서는 이러한 思考층, 欲求층 , 憤怒층이라는 세 가지의 층이 形成됩니다. 이 세 가지는 痴貪 瞋이라고 하는 煩惱로 整 理 됩니다. 이것을 보통 貪瞋痴라고 하는 것은 實踐次元에서 탐이 第一 심각하기 때문에 탐을 먼저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는 痴가 第一 심각한 것입니다. 왜? 痴 에서 貪이 나오기 때문에 痴가 더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講義에서는 논리적 順序로 痴貪瞋이라고 한 것입니다. 痴貪瞋이라는 세 가지 毒은 이런 式으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자, 여러分들이 여기서 工夫해야 될 것은 槪念 以前을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槪 念 以前이 상상되었습니까? 아,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 쪽에서 이렇게 고단할 바에야 그 槪念 以前 의 狀態로 좀 가보아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槪念 以前은 확연하게 경험됩니다. 同事攝고급과정을 마치면서, 아니면 마치기 전에도 可能할 수 있습니다. 同事攝 고급과정을 마치면서 槪念 以前이 확연하게 경험된다 하게 되면 同事攝최고 영예라고 볼 수 있는 頓忘파지자라는 명예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頓忘파지자는 道人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 道人이란 槪念 以前을 경험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勿論 그 경험은 單純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부대的으로 몇 가지를 잘 창치 해놓고 그 몇 가지가 통과 되는가 봐서 “음. 당신程度라면 槪 念 以前을 좀 제대로 경험하고 있는 것 같소. 그러면 당신은 頓忘파지자입니다. 이제 당신은 工夫 의 始作점에 이르렀오. 只今 까지는 工夫 준비과정이었다면 이제 工夫의 始作점에 이르렀으니 只今부터는 제대로 합시다.” 이런 狀況이 벌어지게 됩니다.
마음공부란 우리들의 意識 空間 에서 불필요한 것은 淨化하고, 必要한 것은 시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必要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肯 定的인 念體 입니다. 念體라고 하니까 否定 的으로만 생각하는 境遇가 있습니다. 萬法 은 唯識입니다. 니르바나는 無 爲念體입니다. 그래서 이 肯 定적 念體를 勸奬하는 것입니다. 肯定적 念體는 勸奬하고 否 定的 念體는 淨化하는 겁니다. 그런데 只今 하는 工夫는 무엇이지요? 只今은 이 否定 念體 치.탐.진에 대해 理解하고 앞으로 이것을 지워나가는 것을 工夫 하는 것입니다.
實體 思考는 없는데 있다고 이름을 붙였으니 어리석음이요, 價値 思考 는 알고 보면 좋다 나쁘다 가치화 할 수가 없는 것인데 가치화 했으니 또한 어리석음이며 不滿 思考란 이미 滿足 속에 있는데 불만 속에 있다고 생각하니 또한 어리석음입니다. 이렇게 해서 實體사고, 가치사고, 불만사고는 痴입니다. 그 다음에는 계속 反複하면서 적지 않은 欲 求가 내 속에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貪이라고 하는 煩 惱입니다. 그 다음에 欲求가 마음대로 성취되지 않으니 내속에 짜증, 憤怒가 차 있습니다. 안돼. 안돼. 아이고, 해도 해도 안 된단 말이야, 하면서 마음이 썅, 썅, 썅 합니다. 그래서 썅썅 하는 사람들은 얼굴부터 구겨집니다. 미소 근육이 사라집니다. 그리곤 어디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것처럼 살아요. 그래서 불합리한 잘못된 思 考가 痴, 欲求가 탐貪 , 憤怒가 瞋이라고 해서 이것을 탐.진.치 3독 이라고 합니다.
그럼 여러分은 只今 어떻게 해야지요? 아하, 이것을 어떻게 淨化를 해야 될까? 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 留念해야 할 것은 불만사고를 잘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불만사고, 이것이 행. 불행의 99%를 左右 합니다. 그래서 이 불만사고의 척결 하나가 행, 불행의 99%를 차지한다는 것을 다음에 이어 가면서 工夫 하게 될 것입니다. 左右之間 이 탐.진.치 三毒에 휘둘림을 당하는程度 만큼 고통이요, 전쟁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탐.진.치 三毒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감이 좀 옵니까? 그래 저 탐.진.치 三毒을 놔두고 槪 念 以前으로 가버리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런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三毒을 淨化 해버렸다 하면 槪念 以前 에 가지 말라 해도 槪念 以前 에 가 있게 됩니다. 탐.진.치 三毒정화를 그냥 두고 槪念 以前으로 퐁당 뛰어가서 메롱! 하고 앉아 있어버리면 이 탐.진.치 삼 독이 기운을 못 씁니다. 精神을 바짝 차리게 되면 그런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 가선 그냥 앉아 있으면 탐.진.치 三毒이 점점 시들시들하다가 나중에는 증발되어버려서 내가 탐.진.치가 꽤 있었는데 없어져 버렸네 하는 狀況도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分 들은 “아하, 이 三毒 은 가만 놔두고 槪念 以前으로 가버려도 되겠다 하는 생각을 마음속에 딱 잡아두도록 하시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이 三毒을 淨化하면서 간다고 하면 統合的인 방편이 됩니다. 그 다음은 槪 念 以前에 갈 必 要 없이 요것만 완전 쓸어버리면 된다 하는 방편이 있습니다.
그러면 방법이 세 가지 있게 되는 것입니다. 槪念 以前 으로 가는 방법, 槪念 以前 으로도 가고 三毒도 淨化 하는 방법, 또 하나는 三毒 淨 化 하나만 확실히 해버리면 된다고 하는 세 갈래입니다. 그럼 同事 攝에서 勸奬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三毒정화하면서 槪念 以 前에 가서 으흠 하는 것, 양다리 걸치는 統合的 인 길이 同事攝입니다. 그래서 으흠 하면서 ”어, 내가 옛날에 未成熟하게 살았던 때의 탐.진.치가 보이네. 이것도 한番 싹 닦아 줘버리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양다리 걸치며 努力 하는 것이 同事攝수행법이라고 알고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다음 講義에서는 어떻게 槪念 以前에 있을 것인지, 어떻게 탐.진.치 三毒 을 淨化할 것인지, 具體 的인 수행의 길을 修心體 系라는 이름으로 工夫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