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7 講 幸福論
이 時間 講義는 幸福論입니다. 同 事攝修心 편의 幸福論인데 이 幸 福論 은 修 心 體系의 다른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煩惱 構造 와 修心體系를 하나로 묶은 그 한 묶음의 다른 버전입니다. 그런데 이 버전이 있고 없음의 差異가 대단하다는 것을 여러 分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이 幸 福論이라는 버전이 없어도 修 心1, 2의 講義는 그대로 幸福論입니다. 그런데 그 幸 福論이 대단히 뒤숭숭하고 아주 複 合的인 哲學 體系로 느껴집니다. 幸 福論이 그렇게 哲學 體系로 複 雜하게 느껴져선 안 좋을 것입니다. 그것을 幸福 論이라는 이름으로 딱 整理 해 놓았습니다. 整理해 놓은 것을 잘 보면 그것이 앞에 것을 結 局 反複하고 있다는 감을 느낄 것입니다. 이番 講義를 修 心 3 이라 하고 幸福論 이라 합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여러分들은 어떻습니까? 그냥 극히 감각적이고 극히 상식的으로 幸 福을 생각해 보십시오. 幸福 이란 무엇인가 하면 내 속에 원하는 게 있는데 그 원하는 것이 성취되면 기뻐집니다. 그래서 내 속에 원하는 것, wants 라고 해도 좋고, needs 라고 해도 좋은 것인데 그것이 내 속에 있습니다. 그 needs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 속에 所有됩니다. 所有되면 幸 福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幸福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必要합니다. 원하는 것이 하나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 所有가 있어야 됩니다. 그럼 幸福 의 변수는 무엇이겠습니까? 幸福의 변수는 원하는 것, needs와 所有입니다. 幸福 , 所有, needs, 이 세 개 사이의 함수 關 係가 幸福論입니다.
그 함수 關係를 풀어 보면 幸福은 所有에 비례하고, 欲 求에 反比例합니다. 여기서의 欲求는 needs가 아니고 내 속에서 일어나는 needs에 對한 desire를 欲求라고 表 記한 것입니다. needs와 needs를 향한 내 속의 열망, desire 를 혼동하지 마십시오. needs를 欲求로 表現 한 것이 아니라 desire를 欲求로 表 現한다고 前提해 놓고 들어야 혼동이 안 됩니다. 그러면 내 속에 needs 아이템들이 이렇게 있습니다. N 1, 2, 3, 4 … 이렇게 있지요? 이것들이 내 속에서 다 解 決이 된다면 그렇게 解決이 되었을 때 나의 미래지향的인 needs가 현실로 다가오게 된 그 현실을 所有 라고 합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所有 되면 幸 福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하는 것이 needs로 들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에서 欲求 분의 所有라고 했을 때의 이 欲求는 needs인지 desire인지 확실하게 구별해서 쓰지 않으면 혼동이 옵니다. 그래서 欲求 분의 所有 라고 했을 때 欲求는 desire 槪 念입니다. desire의 對象이 되는 것에는 needs가 있습니다. 그런데 欲求는 needs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needs를 향한 마음. 그것을 향한 내 그 욕심의 程度를 말합니다. 이程 度 說明하면 시원하시겠지요.
여기에 幸福 公式 이 있습니다. [幸福 = 所 有/欲求]가 幸福 公式인데 幸 福을 決定하는 변수는 所有와 欲求 두 가지입니다. 이 公式에서 幸 福論세 가지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幸 福論1, 幸福論2, 幸福論 3이 도출되게 됩니다. 먼저 幸福論 1 을 봅시다. 煩惱 構 造를 떠올려 보세요. 槪念 以前, 墜落, 實體사고, 가치사고, 欲求 , 憤怒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런데 이 過 程에서 世上 사람들은 自 己가 欲求하는 것이 성취되면 幸福해진다고 하는 것을 상식的인 價 値觀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70억 인류 중에 몇 사람程度가 이 상식的인 幸 福論을 가지고 있을까요? 欲 求하는 것을 성취하게 되면 幸福하다는 幸福論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70억 중에 몇 명이겠습니까? 70억 全部가 欲求하는 것이 성취되면, 所有되면 幸 福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삽니다. 그 생각을 무엇이라 하는가 하면 具 現 幸福論이라고 합니다. 이 具現 幸 福論으로 사는 사람은 70억 전 인류입니다.
그런데 同事攝역사에서는 이 具現 幸福論은 아예 幸福論으로 쓰지도 않았습니다. 이따위 思考 方式으로 살면 사람도 아니라는 듯이 취급했어요. 그런데 修練會 에 오는 사람은 全部 70억 인류 중에서 옵니다. 와서 보니까 自己를 벌레취급 한단 말입니다. 자꾸 이래 가지고 올 때마다 이 部分에 걸립니다. “그래도 말이야. 나는 무엇을 이루는 재미로도 살고 어쩌고 하는데 말이야. 어째서 나를 벌레 취급을 하느냐” 하면서 여기에 자꾸 걸립니다. 이 同事攝 修練기계가 팍팍 돌아가야 되는데 늘 그것이 걸리는 歷 史를 살아 왔어요. 그래서 내가 아예 具現 幸福論이 있다고 해놓고 具現 幸福 論을 뛰우고 具現하는 幸 福으로 살아라, 이렇게 막 해줘버려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具現 幸福論입니다. 여러 分들 원하는 것들, 많은 needs들 있지요? 그 needs 1, 2, 3, 4 … 있지요? 이것들이 마구마구 所有권으로 들어와서 所 有되어서 마구마구 幸福해 지십시오. 그러면 그렇게 되기 爲해서 여러分들이 具現 을 보다 더 效果的 으로 하면 좋겠지요?
그러면 具現 幸福 論에서 여러分들이 두 가지만 留 念하세요. 그 하나는 具現의 原理입니다. 아, 正말로 내가 欲求하는 1 to 10을 所有 권으로 잡아서 幸福해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具現을 할까? 어떻게 해서 實現 을 할까? 實現을 效果 的으로 하는 길은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效 果的인 具現의 길, 이것이 具現의 原 理입니다. 具現의 原 理를 여러分 들이 좀 알고 具 現하는 삶을 사시라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原理로 具現하고 그런 幸 福으로 살려고 합니다. 同事 攝에서 勸奬하는 具現의 原理보다 더 좋은 具現의 原理 를 나름대로 터득해가지고 具現하는 幸 福을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具現 하려고 해도 현실에서 具現이 착착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대로 안 되어서 한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關係에서도 한없는 투쟁과 전쟁을 빚어내는 것 또한 事 實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于先 전쟁은 놔두고라도 아무리 具現하려고 해도 되지 않으니까 속상해 죽겠어, 합니다. 속상해 죽겠다는 狀況이 됐을 때 어떻게 하면 되겠어요? 具 現이 안 돼도 속상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겠지요?
그래서 두 번째로 留念할 것은 스트레스 극소화의 길은 없을까, 하고 이 길을 모색해 보아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트레스 극소화 길에 對한 答은 2 番 幸福論, 3 番 幸福論에 들어 있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部 分이 解決되면 具現 幸福의 길이 괜찮겠지요? 效果的인 길을 알아서 具 現이 제법 되는데 具現 이 좀 된다고 하더라도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기 때문에 이리저리 상쇄해 버리면 結局 은 이놈의 具現 幸福 論 으로 살았더니 내 靈性 은 플러스, 마이너스로 제로를 지나 마이너스 권으로 떨어진다는 狀況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具現 幸福論으로 살 바에야 거기에서 미비한 것 취약한 것을 보충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번으로 무엇을 보충해주어야 한다고 그랬지요? 效果的인 具 現이 되도록 보충해주면 좋고, 스트레스를 안 받는 쪽도 解 決 해주면 된다는 겁니다. 同事 攝에서는 具現의 原理로 4개정도를 强調 를 해줍니다. 그러면 이 程度를 배우면서 效 果的인 具現 部分에서 도움을 받으시고, 스트레스 극소화 部分은 幸福論 2 番과 3 番이 다 解 決하니까 幸福論 2 番과 3 番을 명쾌하게 쥐고 이것을 향유하다 보면 이 具現 幸福 論이 함께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效果的인 具 現의 길을 簡單하게 整 理 해 놓고 스트레스 극소화의 길로 가기로 합시다. 여러分 들이 具現한다고 하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于 先 目標를 선명히 정하라 하는 겁니다. 目標를 선명히 정했으면 그 다음은 계획을 합니다. 다음으로 계획을 했으면 그것을 실천하도록 努力을 해야지요. 目標를 선명히 정하고 계획을 잘 하고 그리고 열심히 努力하는 것입니다. 계획표는 만들어 두었는데 努力을 안 하는 수도 있어요. 사람의 기질에 따라서 實踐派가 아닌 사람은 계획이 빤히 보이고 계획표도 제법 만들었는데 하라고 하면 우리 아무개처럼 안합니다. 그래서 目標-계획-노력은 基本입니다. 이 基本에 對해서 自己가 自 己를 신뢰할 만큼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대체로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2 番 부터 5번까지가 부실합니다.
2 番 原理는 무엇이냐?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그럴싸한데 내 無意識에서는 그것을 拒否하고 있을 수 있어요. 어떤 고상한 선비가 돈을 벌려고 目 標를 정해서 계획표를 만들었습니다. 그래 놓고 努力한다고 깜냥은 합니다. 그런데 無意識 에서는 “청빈이야. 선비는 가난해야 아름다워” 식과 같은 투명신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런 無 意識 信念이 있다면 내 손과 발이 意識을 따라 가겠어요 아니면 無 意識을 더 잘 따라 가겠어요? 단연 無意識을 따라 가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원하라 하는 겁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原理하나입니다. 진정으로 내 無 意識이 원하게 되면 그것은 活 句가 됩니다. 내 無意識 에서 “아니야”, 하게 되면 그것은 안 됩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위장병이 있습니다. 아픕니다.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되겠어 하고는 내 속에서, 내 無意識에서 “나는 적당히 앓아야 돼.” 합니다. 적당히 아파야 된다는 투명신념입니다. 투명신념을 無意識신념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믿어지십니까? 믿을 수 없을 만큼 있는 것이 투명 信念입니다. 그러니까 그 無意識 의 소리를 제대로 꿰뚫어서 잠재워야 합니다. 意識하고 相應하는 無意識 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番 原理는 확신1, 2 입니다. 확신 1은 될 것이라고 믿고, 확신 2는 나아가서 되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룰 것이라고 확신하고 이루어졌다고 확신할 수 있으면 더 좋다는 것입니다. 이루어졌다고 확신한다. 이것은 얼른 共感 이 안 되는 소리일 것입니다. 이것도 道 位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러 分들, 九 歲十歲互 相卽이라는 소리 들어봤지요? 이것은 화엄철학이고 깊은 佛敎 哲學입니다. 우리들이 과거, 현재, 미래 운운하지만은 그 과거, 현재라고 하는 이것들은 어때요? 우리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 그냥 同時 인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分들이 어떤 目標를 정해가지고 具現해갈 때 이미 성취됐음이라고 딱 확신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확신을 딱 해버리면 어떻겠습니까? 확신에 의한 念體때문에 그 일은 필히 된다는 겁니다. 확신을 확실히 하면 된다는 겁니다. 확신을 확실히 하면, 저 앞산 없어져라 하고 없어졌음을 확신 하는 瞬間에 앞산은 이미 없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一切唯心造라고 하는 것이 적당한 수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分 들이 되었다고 확신하면서 일을 할 때 그 일을 한番 보세요. 능률이 훨씬 잘 오를 것이고 흥이 날 것이고, 뭣인가 제2, 제 3 의 힘이 보태지 것처럼 일이 되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일에서 두루두루 성공을 해온 분이 이 자리에 계신다면 “어쩌면 저 양반은 사업가도 아닌데 딱 내 말을 대신 해줄까?” 할지도 모릅니다. 될 것이라고 믿고 되었다고 믿어라 하는 것입니다.
4 番 原理. 내가 원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면, 확실히 되었다 하고 확신된다면 기쁘겠지요? 기쁩니다. 그래서 기뻐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感謝 하겠지요? 그래서 기뻐하고 感謝하라는 것이 4 番 原理입니다. 여러分들이 다이어트를 원하면서 “아이고 내가 55 Kg 면 좋은데 65 Kg 란 말이야. 언제 될 것인고? 너무너무 어려워”, 한다면 그 사람 다이어트가 잘 되겠어요? 그런데 “나는 55 Kg이야”, 하고 55 Kg 아이덴티티를 딱 취해버려요. 그것이 ‘됐다’라는 확신입니다. 만약 그 아이덴티티를 내 無意 識이 받아들였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無意 識명령을 안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 나는 55 Kg 야, 그러면서 막 기뻐하십시오. “나는 55 Kg 이라니까. 아이고, 나는 너무 기뻐. 아이고 感謝합니다. 感 謝합니다. 이 천하가 나를 55 Kg로 이렇게 만들어 줬다니까요. 感 謝합니다” 하는 式으로 약간 크레이지 하게 되란 말입니다. 이것은 약간 돈키호테的인 에너지가 있어야 됩니다. 햄릿과 같은 그런 에너지는 龍陀 스님, 약간 미쳤나봐 그렇게 볼 것입니다. 그런데 약간 돈키호테的인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에너지, 기뻐하고, 感謝하는 에너지는 바로 어디로 이어지겠어요? 일하는 대로 막 이어져버립니다. 그래서 일은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뻐하고 感謝하라입니다.
5번 原理는 베풀어라입니다. 내가 이루었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베풀고 살아야지요. 여러分들, 어디 가서 자꾸 베풀어 보십시오. 커피값이라도 내가 내련다 하고 막 내십시오. 왜? 나는 只 今 이루어서 巨富 니까 내가 내야 됩니다. 당신은 좀 양보해봐. 내가 내야겠어 하면서 늘 내보십시오. 그것 참 묘하게 재미있습니다. 마치 부자인 것처럼 딱 이렇게 하면 재미가 있습니다. 나는 통 거지잖아요. 거지니까 내가 부자인 것처럼 해보자 하면서 한 쪽에서 딱 베풉니다. 그러면 다른 쪽에서 돈이 들어와요. 그럼, 分明히 이자 보태가지고 막 들어옵니다. 나한테 돈 주는 사람이 나를 미워할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끼리만이니 말하는데 이게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니 베풀어 보십시오. 그러고 여러分들이 베풀게 될 것 같으면 이것은 확신 2를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베품은 바로 성취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고 베풀 것 같으면 속에서 딱 베푼 에너지가 빵빵하게 차오릅니다. 그러면 천신들이 돕게 되어 있어요. 너무 신비한 얘기로 들리니까 이런 얘기는 빼려고 했는데 천신을 否定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인가가 에너지를 딱 막고 베풀려는 마음을 차단시켜 버리고 있으면 천신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천신이 없더라고 베풀면 옆 사람들이 늘 느낍니다. 그러면서 괜히 그 사람을 돕고 싶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具 現의 原理를 가지고 具 現의 效果를 높여라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스트레스 극소화 길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입니다. 그 答이 幸福 論2 인 知足 幸福論입니다.
價値 思考밑에 不滿 思考가 있었지요. 不滿 思考 를 전환시키는 방법은 知足사고입니다. 知 足幸福論 . 이것은 이미 넘치는 所有 속에 있음을 확인하는 겁니다. 所 有는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미래형 所 有가 있고, 이미 내게 완료되어져 있는 所有 형이 있어요. 이것이 완료형 所有입니다. 具 現 幸福論은 미래형 所有에 集 中을 하는 幸福論입니다. 具現 幸 福論은 완료형 所有를 간과하는 幸福論 입니다. 그러나 미래형 所有를 具 現해가되 완료형 所有룰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旣存, 旣成 이라. 나에게는 이미 있고 이미 이룬 것이 넘치게 있다. 나에게는 只今 이미 있는 所有가 넘치게 있다고 하는 이 自覺 이 바탕이 된 幸福論 이 知足幸福論입니다.
내가 이미 넘치는 所有 속에 있으니 어떻겠습니까? 넘치는 幸 福입니다. 그러고 實際로 暝想을 해보세요. 그러고 知足幸福論의 포인트를 旣成에 두지 마세요. 여러分 들이 旣成에 중점을 두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 대신 포인트를 旣 存에 두십시오. 旣存. 내가 숨을 안 쉬려고 해도 이렇게 저절로 숨이 쉬어집니다. 이런 旣存 쪽에 포인트를 두십시오. 완료형 所有. 그 중에서도 旣存 쪽에 눈을 떠서 완료형 所有에 對한 눈뜸이 어느 程度 수준에 올라갔다 하면 내가 넘치는 所 有 속에 있음을 알면서 진정 凡事가 感謝하구나 하면서 幸福 의 99% 가 解決됩니다. 그것이 知 足幸福論 입니다. 여러分들이 수없이 工夫해왔던 것이 그것이고 同事攝의 특색이 知足幸福論이다 하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이 知足幸福論이 具 現 幸福論에 보태졌다 하면 이미 넘치는 幸福 속에, 넘치는 所 有 속에 있다고 하는 前提 위에 내가 이렇게 具現해 가려고 하기 때문에 이 具現이 안 되더라도 나는 이미 넘치는 幸福 속에 있다고 하는 信念 덕분에 설레는 마음으로 具現해나갈 수 있게 됩니다.
3 番 幸福論은 무엇일까요? 欲求 部分 과 關係된 幸福論입니다. 所有는 둘로 나뉘어지기 때문에 미래형에 集中하면 具現 幸福論, 완료형에 集中하게 되면 知足 幸福論이 나오고 여기, 欲 求에 集中하게 되면 超越幸福 論 이 나옵니다. 자, 여러分들이 어찌어찌해서 나도 空하고 世上도 空하다는 공의 理致가 깨달아졌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렇게 되면 欲 求(desire) 제로가 됩니다. 제로가 너무 흑백的으로 들리면 0.001로 되버린다 해봅시다. 제로 분의 1은 무한입니다. 그래서 이 欲求가 쉬게 되면 所有량이 幾何 級數的으로 커집니다. 欲 求 제로가 되면 디오게네스가 되는 것입니다. 제로 분의 所 有. 이럴 때는 所有가 많지 않아도 됩니다. 0.1만 되도 됩니다. 제로 분의 숨만 쉬고 있음 만으로 充分합니다. 제로 분의 1은 무한대입니다. 무한. 무한 오케이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頓忘 파지의 길입니다. 無我의 길입니다. 그래서 幸福論은 세 가지 幸福 論으로 整理할 수 있습니다. 여러分들, 具現 잘해서 幸 福해지세요. 그런데다가 이 밑에 있는 제대로의 幸福論이 장착되면 具現까지 함께 살아나니 얼마나 좋습니까. 具現 幸福論, 知足幸 福論, 超 越幸福論 . 여러分들이 앞으로 修練을 通해서 實際로 만큼의 境 地에 올라가시겠지만 一旦 이 세가지 幸福論을 선물로 드립니다.
感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