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10 講 非我 暝想

여러 하세요. 을 떠올리면서 에 이어서 해 보십시다. . 종전에는 확률으로 라는 말을 더 많이 썼을 거예요. 그런데 라는 말도 쓰였어요. 나는 라는 말이 더 좋아요. . 그것은 나는 없다, 이런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는 내가 아니다 그러잖아요. 여기에서는 나의 있고 없음이 하겠어요? 아니면 이고 아니고가 하겠어요? 이고 아니고의 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어감이 가 더 좋습니다. 그러나 나 그 뜻은 끝내는 개념으로서 쓴 것입니다.

이라. 자, 를 얘기하려면 이야기 거리가 많습니다. 를 말하기 해서 부처님 일대기 중의 한 을 끌어올려 보겠습니다. 는 29세에 산으로 들어갔어요. 산으로 들어가서 머리를 깎고, 그냥 누더기 옷을 입고 한 사람의 이 됐습니다. 왜 그랬느냐. 속에 너무도 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의식이었느냐. 사람이 한 번 태어나게 되면 한 번 죽잖아요. 는 죽음만 생각하면 했어요. 이 찬란한 이, 이 소중한 이 한 번 오는 죽음으로 해서 완전히 무의미로 돌아가 버린다. 이건 받아들일 수가 없다. 너무나 하지 않다,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은 완전히 상식인 것입니다. 여러들, 그런 생각 안 들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안 드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내가 그 생각으로 아주 절절하다고 하면 “아이고, 무슨 그런 생각을 해쌌냐” 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 사람은 이었나.” 막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은 내가 그 죽음 를 놓고 보통 사람들보다는 조금 강도를 한 수 달리 해서 마음을 썼던 터라 께서 죽음에 걸려가지고 이러고 저러고 하는 것이 참으로 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내 하고 딱 일치가 되는지 어쩐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거의 아마 이 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죽는 것은 하지 않다는 겁니다. 하지 않아. 나는 죽음에서 벗어나서 영원히 살고 싶은 거야. 말하자면 입니다. 란 내가 만들어낸 하나인데 의 그런 마음을 라고 보면 됩니다. 은 어땠어요? 죽음이 싫었어. 그러니까 들을 풀어서 를 찾게 했습니다. , 곳곳, 끝까지 가서라도 를 가지고 오너라. 을 가지고 오너라, 딱 이랬다고요. 그런 가 사람이면 누구나 있습니다. 그래서 는 그 를 했어요. 이 를 어떻게 할 것이냐. 내가 이 되고 무엇이 되고 그래서는 안 되겠구나. 그러니까 산속으로 가서 한가하게 하는 해서 해야겠다고 해서 하신 겁니다. 여기까지는 아주 인, 이 있기 때문에 다 얘기할 수는 없고, 그냥 블록을 잡아서 얘기하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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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속으로 갔어. 한 을 해본다고 혼자 이렇게 을 해봤어. 마음대로 안 돼. 이것이 마음대로 안 된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누구인가 스승을 찾고 문화를 찾고 이래야 되겠다. 그래서 스승과 문화를 찾아서 거두인 아라라칼라마를 스승 삼게 됐고, 아라라칼라마 밑에서 일, 이 주일 만에 스승의 에 올라가 버렸어요. 스승이 놀라서 “나는 평생해서 이 에 왔는데 너는 이렇게 빨리 와버렸느냐. 너야말로 천재 중의 천재다. 네가 내 수제자다. 이제 앞으로 너와 내가 내 교단을 운영하자.” 그랬습니다. 에서는 어때요? 땡큐하겠습니까?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 것이지 이 아니라 무 까지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내 죽음하고는 무관한 것이니 이것은 나에게 길이 아니요 하면서 스승을 떠납니다. 그 다음에 찾아간 스승이 웃다카라마푸타입니다. 웃다카라마푸타의 이었어요. 거기에도 한 일,이 주일 하면서 쑥 올라가버렸습니다. 웃다카라마푸타 스승이 놀라서 “아이고. 에.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나는 평생 해서 비상비비상처정에 올랐는데 너는 어떻게 된 속이냐. 자네 놀랍네. 이제 나와 함께 교단을 운영하세. 자네가 내 수제자네." 그러면 가 ”아이고, 합니다. 무슨 은혭니까.“ 했겠습니까? 는 ”나에겐 가 있습니다. 그 이 안 되는데 어떻게 그러하겠습니까. 마음은 하나, 제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 하면서 또 떠납니다. 그 당시 계의 스승 두 사람을 거치면서도 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경전에 자세한 것은 없지만 그 전에 이미 바가바 선인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짧게나마 다 섭렵해버린 였고, 마지막에 대스승이라고 하는 두 분을 다 통과하며 그 스승들의 에 모두 올랐으나 그 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에 거기를 떠났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디를 가야될까요? 안 해 본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을 안 해보았습니다. 을 안 해보았으니까 이제 그러면 을 해보자 하고 림에 들어가서 이 5년 6개월입니다. 6개월 내에 두 스승을 거친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겠습니까? , , 부터 가였어요. 이미 의 한정없는 깊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하게 되면 쑥쑥쑥 들어가 버렸지. 그런데 은 어때요? 5년 6개월 을 했습니다. 의 본질은 무엇이지요? 몸을 괴롭히는 것이 입니다. 몸을 괴롭히려면 무엇부터 해야 될까? 먹는 것을 안 먹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예 안 먹으면 말라 죽어버리니까 최소한 먹자 해서 , 삼씨 하나, 쌀 알 하나, 곡식 두 알을 먹으면서 버텼습니다. 그러니까 피골이 상접해 버렸어. 뉴델리 박물관에 가면 부처님의 6년 상이 있는데 6년 상은 딱 그 모습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피부가 뼈에 딱 붙어있는 모습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내가 3주일간 단식을 해보았는데 그와 비슷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6년 상은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하고 이 갑니다. 그런데 는 몸을 괴롭히고 괴롭히고 괴롭히면서 로 인기였습니다. 정반왕의 태자 싯다르타 수행자가 일인자라 해서 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일인자 트로피를 손에 들었어요. 기뻤을까? 트로피는 남들이 준 것뿐이지 본인은 전혀 기쁘지 않아. 기쁘려면 되어야 기쁘겠지요.

그런데 어느 에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몸에 기력이 너무너무 없어진 에선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돼요. 그래서 그 트로피를 팽개쳐버렸어요. 그 트로피, 금빛이 번쩍번쩍번쩍 했을 것 같지요? 트로피를 던져버리고 에 가서 목욕을 하려다가 쓰러져 버렸어요. 마침 양치기 소녀가 지나가다가 보니까 거지 수행자 하나가 쓰러져 있어요. 가서 보니까 숨은 쉬고 있어. 그래서 차고 있던 유미죽 통에서 유미죽을 꺼내가지고 입에다 집어 넣어줬어. 그러니까 달싹달싹 먹거든. 유미죽을 먹여서 살려낸 것입니다. 이미 피폐될대로 피폐되었던 는 유미죽으로 기력을 찾게 됩니다. 기력 찾는데 유미죽을 한 2주나 3주 는 얻어먹었지 않았을까 하고 혼자 상상해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단식 끝내고 먹기 할 때 한 먹으면 힘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5년 6년을 하던 몸뚱이라서 얻어먹고는 아직 기력이 좀 어려웠을 테고 아마도 2~3주는 얻어먹었을 것이다 합니다. 2~3주 유미죽을 얻어먹으면서 기력을 찾아서 “아, 뭣인가 힘이 나고 이쯤 되어야 뭣이 되지.” 하고 보리수 하에 앉게 됩니다.

보리수 하에 딱 앉을 때 는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런 를 가지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나에게는 스승이 없다. 내 스스로를 스승 삼을 수밖에 없다. 내 스스로를 스승 삼고 보리수 하에 이렇게 결가부좌로 좌정한다. 여기에서 내 하지 못하면 이대로 죽겠다.” 합니다. . , 정각을, 큰 깨달음을, 바른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면 ,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고 천지신명에게 서약을 하고는 결가부좌하고 앉습니다. 앉았어요. 한 , 두 , 세 , 네 , 하루, 이틀. 아마 그것이 일 주일은 안 넘었을 것 같아요. 왜냐. 사람 몸이니까. 하지 않으면 나는 이대로 앉아서 죽겠다고 서약을 하신 분이기 때문에 일 주일 됐다고 해봅시다. 여러 들, 일 주일 동안 요지부동 이러고 있으라면 있겠어요? 어렵지요. 보통 사람은 어려워요. 그러나 들은 어렵지 않습니다. 딱 앉았어요. 일 주일이라고 합시다. 일 주일이 지나는 동안, 좌정에 들어가서 일 주일 후에 이 성취됐다고 하면 일 주일 사이에 무엇을 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했겠어요? 그냥 하게 곧장 답을 드리자면 를 했어요. . 을 했어. 을 했다고. 을 했다고 하면은 깜짝 놀랄 전문가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이리저리 궁리를 해봐도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다른 어떤 것은 길이 없어. 오직 천하의 했던 것입니다. , 격물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천하의 모든 일이, 인류 문화사의 모든 것이 생각에서 나옵니다. 거기서도 그분이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그런데 생각 말고 다른 것을 해서 나왔다고 자꾸 그런 발상을 내놓라고 하느냐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를 더 깊게 해서 보다 깊은 에 들어갔기 때문에 됐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어처구니가 없어요.

나는 죽는다. 나는 죽기 싫다. 나는 죽는다. 나는 죽기 싫다. 여기에서 나는 죽는다와 나는 죽기 싫다의 교집합이 무엇이지요? 《나》입니다. 나는 죽는다. 나는 죽기 싫다. 이 두 문장의 공통분모. 그것은 《나》입니다. 나는 죽는다. 그런데 나는 죽기 싫단 말이야. 나는 죽는다. 나는 죽기 싫단 말이야. 가 이러고 있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하지? 나는 죽는데 나는 죽기 싫어. 이걸 어떻게 을 해야지? 하는데 드디어 그 《나》가 로 떠오른 거예요. 아, 내가 죽기 싫어하는데 죽기 싫은 이 《나》라고 하는 게 도대체 무엇이지? 그러면서 당연하게 이 몸뚱이가 《나》라고만 여겼던 그 《나》를 향하여 이 “나란 무엇이냐” 하는 가 하나의 로, 인 테마로 확 올라온 거예요.

그래서 나의 해서 가만히 을 해보니까 나라고 하는 였습니다. 이것이 로서, 으로 그냥 나 혼자 잘나서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없이는 살 수 없고, 물 없이는 살 수 없고, 아버지 없으면 하지 못하고, 어머니 없으면 하지 못하고, 할아버지 없으면 하지 못하고, 땅 없으면 하지 못하고, 하늘 없으면 하지 못하고 하면서 나를 시키는 조건이 그냥 한정없이 막 따라붙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가 어우러졌을 때 내가 무엇인가 의미를 갖는 것이지 《나》를 딱 끊어서 이것만이 《나》라고는 도저히 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이 보이면서 여기서 《나》를, 이렇게 보면서 괴로워하던 이 《나》를 멀리 떼어 놓고 보아버린 거예요. 아, 저 없이는 할 수 없고, 물 없이는 할 수 없고, 어미 아비 없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없이는 할 수 없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없이는 할 수 없고, 하는 가 딱 보입니다. 그래놓고 보니 《나》뿐만 아니라 하는 모든 것이 저 혼자 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무엇과 를 맺으면서 하는구나. , , , , . 이것은 완전히 네트워크 예요. 속으로 들어가 보아도 네트워크요. 밖으로 나가 보아도 네트워크요. 네트워크로 딱 엮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까지 그렇게 하던 《나》를 멀리 떼어 놓고 보니 그 《나》는 중의 집합의 하나로, 한 고리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에 해서 이기으로 마구마구 집착하던 에너지가 쏙 빠져버리면서 에너지가 으로 팍 열려버렸어요. 그러니까 나에 해서 심각하게 걸려있는 마음이 탁 놓여져 버린 겁니다.

그런데 가들은 거기에서 고비를 넘기지를 못 해요. 는 이야기하는데 그 을 바라보면서 내 속에서 확 뿜어져 나오는 대자유감까지 이어가지를 못합니다. 그냥, 로만 생각만 하지 자유감, 감을 느끼지 못하니 유감스럽지요. 이므로 한 것이고, 공하기 때문에 인 것입니다. 그럼 이 무엇입니까? 이 무엇으로 드러나야 되겠어요? 끝내는 자유감으로 드러나야 됩니다. 마지막 결실은 입니다. 자유감. 감. 그래서 느낌이 구원이다, 느낌이 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여러들 속에서는 과연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저 말이 옳을까, 그를까 그렇게 생각이 되십니까. 어때요? 이 때 스님 말씀이 옳을까, 그를까, 그러지 말고 여러들이 으로 스스로 생각해봐서 아, 내가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럴 것 같다 이래야 합니다. 스님 말도 곧이 안 들린디면 또 누가 말해도 또 곧이 안 들려서 저 말이 진짤까 아닐까 또 따질 것 아닙니까. 또 따지고, 또 따지고, 또 따지고, 또 따지고 따지다가 세월 다 가버립니다. 그러니까 을 해야지 끝내는. 아, 저 말씀을 근거로 해서 내가 생각해보니 정말 저 말이 그렇겠다 하고 생각을 해야 그것이 내 것이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여러들이 라고 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면 이기 때문에 어느 을 확 잡아가지고 그것을 시해서 《나》다, 무엇이다 할 수 없겠구나가 보이면서 탁 트여버린, 연결된 가 보여야 됩니다. 가 보이면서 어느 하나로 되어져 있던 이 답답한 이 마음이 탁 놓여져 버려야 됩니다. 놓이면서 그 놓여진 탁 트임을 가슴에서 경험을 해야 합니다. 이 볼펜도 여기에 을 할 때에는 내 마음이 여기에 딱 요렇게 딱 갇힙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른 것과 연관되어 있다고 하면 가 싹 보이면서 볼펜에 하던 마음이 탁 놓여지게 됩니다. 건너다보면서 감이 체험되는 것입니다. 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은 우리의 , 란 무엇일까요. 의 논지는 에 있습니다. 이므로 요, 입니다. 그래서 내가 스물일곱 가지를 한 것 중의 1번이입니다. 왜? 께서 , 해내셨어요. 그것을 해공27조의 1번으로 쓰고 있는 겁니다. 그래놓고 보면 이 하는 모든 것들이 입니다. 저 혼자 독립할 수 없어. 예를 들면 죽음이 있으려면 이 있어야 됩니다. 생이 있으려면 생의 뿌리인 씨앗이 있어야 돼. 이 있어야 돼. 라고 하는 업이 있어야 돼. 이것이 또 만들어지려면 행위가 있어야 되고 행위가 만들어지려면 이러고 저러고 해야 됩니다. 이래서 라고 하는 순환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혼자 독립된 는 없어요. 를 맺으면서 , 를 맺으면서, 으로 수많은 것이 연결되어 있어야 되고, 으로 수많은 것이 연결되어서 이 고리 하나가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고리가 어리석을 것 같으면 제가 혼자 잘난 줄 알고 여기 《나》에 을 하게 되요. 그것이 고 그것이 입니다. 이 를 깨뜨려주자는 것이 입니다. 왜? 에 걸려들었다 하면 고통이 되고 전쟁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 하게 만들어야 되겠다 이 말입니다. 가 놓아지려면 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바로 보니까 하더라, 더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므로 하다고 하는 것은 여러 들 몫입니다. 여러들이 거기에 머물러서 잘 들여다보십시오. 아, 공하구나 하는 것이 올 때는 먼저 로 옵니다. 그러나 에 머무르게 되면 학자입니다. 로 왔을 때 느낌을 살펴보십시오. 로 공하구나 하고 왔을 때 느낌을 살펴보면 그 의 있고 없음의 . 그 를 모를 때에 하면 한결 달라진 탁 트인 을 느끼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을 느껴야 결실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들 몫입니다. 그래서 저 한 메뉴로 만들어냈어요. 여기에 쌀이 있으면 쌀을 가지고 떡도 만들고 뭣도 만들고 밥도 만들고 뭣도 만들고 뭣도 만들고 하듯이 를 가지고 를 만들고, 를 가지고 를 만들고, 를 가지고 를 만들고, 를 가지고 막 다 만드는 겁니다. 입니다. 내 몸뚱이는 으로 조합된 것입니다. 내 몸뚱이를 관으로 해보면 입니다. 그러면 내 몸에 애착을 붙이고 내 몸, 내 몸, 내 몸 하던 마음을 살짝 내려놓고 내 몸을 으로 관조해보아라 하는 것입니다. 내 몸이 으로 딱 관조될 때 내 몸에 집착했던 마음이 에 집착하겠어요 에 집착하겠어요 에, 에, 그 어떤 것에 집착하겠어요? 내 몸을 네 조각이 아니라 100조각으로 쫘악~ 흩어 놓아 보십시오. 100쪽을 어디 가서 내 마음이라고 하겠습니까. 비유. 바로 그것이 의 하나입니다. 법입니다. 저기에 가 있지 않느냐. 예, 어디 가 있는가 봅시다. 그래서 를 딱 분해해서 “대왕이시여, 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했습니다. 그 때 대왕은 그 말에 무릎 딱 꿇고 “당신은 나의 스승입니다” 하고 나선비구를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내가 , , , 했는데 를 딱 분해해 놓고 보니까, 아니 는 사라지지 않고 마당에 쫙 깔려있기는 한데 라고 할 만한 것이 없거든. 그러니까 , , , 하면서 에 집착하던 마음이 딱 놓여지는 것입니다. 이 에서 일어나는 탁 트인 체험은 여러 들이 해내십시오. 그래서 그것을 해내시게 하려고 해공27조까지 만들어서 여러들 손에 쥐어주지 않았습니까. 해공27조를 거듭 이렇게 들여다보고, 또 음미해보고, 음미해보고, 음미하다 보면 여기에서 탁 트이는 그 느낌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으로 보더라도 이고 그냥 으로 봐도 입니다. 의 다른 버전인 으로 보더라도 몸뚱이는 이니, 가 나라고 할 수 있겠냐. 가 나냐, 가 나냐, 이 나냐.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지 않느냐 해서 가 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 내 마음을 가지고 《나》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잘 보니까 이 엮어진 것입니다. 이 엮어진 이것을 까지 내가 마음이라고 했는데 는 수일뿐, 그것이 나냐, 내 마음이냐, 이렇게 물어보면 는 수입니다. 은 상일 뿐, 나는 없습니다. , 그 어디에도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 속으로 보면 이기 때문에 속으로도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밖의 몸뚱이는 이니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 그래서 내가 까지 나, 나 했던 것은 내가 한 생각 일으켜서 을 억지로 만들어가지고 이것이 《나》야,한 것이 나야 나, 이랬을 뿐이지 깨닫고 보니, 하고 보니, 《나》라고 하는 것은 에 없구나 하는 것이 확실해져야 합니다. 이 가 확실해져 버릴 때 가 사라져버립니다. 뿐만이 아니라 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컵도 컵에 하면 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들, 이 컵이 하는 것 같지요? 이 컵을 시키기 위해선 온도부터 합니다. 온도가 의 이여야 합니다. 온도가 갑자기 가 5,000 도가 되었다고 해보십시오. 컵이 어디 있겠어요? 녹아서 다 증발해버립니다. 그러니까 적당한 온도까지 해서 컵을 논해야 됩니다. 그런데 왜 다른 것은 배제해놓고 딱 요것만 가지고 컵, 컵 하고 있습니까. 또 컵, 컵 하면서 하면 좋은데 하지 않아요. 컵 가지고 싸웁니다. 그래서 해공27조가 여러의 답입니다. 해공27조, 에 접근하는 스물일곱 개의 방법을 거듭 음미하면서 이렇게 느껴보고, 느껴보고 하다가 보면 묘합니다. 이란 것이 묘합니다. 처음에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것이 입니다. 그런데 에 익어지다 보면 술술술술 마시는 것같이 술술술술 됩니다. 적응이 됩니다. 저 도 마찬가지, 도 마찬가지, 도 마찬가지, 죽음 , 나지사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습니다. 그런데 점점점점 적응이 되면서 아, 너무너무 당연하네 하면서 그 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것이 딱 내 몸이 됩니다. 여러들이 백산이 되기 해서 다소 해야 될 거예요. 여러 들이 백산가 되려면 이것을 보고 컵이라고 우겨대는 마음부터 없어져야 합니다. 의 완료는 제로화의 입니다. 그래서 이 확연해지게 되면 필요 없어요. 가 확실해져버리면 바로 이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가 하나의 구원론이예요. 그래서 이라고 합니다. . 를 그냥 한마디로 말하면 , 공의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자, 관에 해서 이 계속 이 된다면 이야기거리는 계속 있습니다. 이쯤 , 를 하고 이 마칩시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