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21 講 修行四位와 頓忘六位

의 옵션 입니다. 라고 하면 어떤 이라도 떠오릅니까? 라고 하면 또 어때요? 가 아직 벙벙하죠. 그것도 모를 때 하지 알면 입니다. 는 수행을 해가는데 있어서 1 는 어떠하고, 2 는 어떠한가 하는 것을 4 까지로 한 것입니다. 또 은 6 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로 엮어서 하기로 합시다.

여러들이 수행을 해간다 하면 관점에 따라서 달리 할 수 있지만은 으로 말하면 첫 번째로 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의 1번은 정립입니다. 단 인 예를 들면 인이다 하면 , 12 , , 이것이 입니다. 당시에 이것이 였고 거기에다 옵션이 조금 붙어있을 뿐입니다. 께서 생존해 계실 때는 시도 때도 없이 그것만 가지고 설법을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4 성제, , 입니다. 인이라면 4성제, , 8정도라는 이 를 하나의 으로 딱 정립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수순을 어떻게 밟았는가 하면 4성제의 , 앞에서 말한 에서부터 까지의 열두 고리인 , 으로부터 까지의 를 딱딱 하나씩 하면서 지나가게 하였습니다.

라. 그렇지. 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 그것이 보이지 않느냐. 이런 으로 지나갑니다. 라. 사랑하는 것과 작별하는 고통이라. 사랑하는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죽고 에 따라서는 아들 딸까지 죽어.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것이 고통 아니냐. 라. 보기 싫은 것과 만나는 것도 고통이 아니냐. 이런 으로 를 쫘악 하면서 다, 은 고다, 이렇게 느끼면서 을 합니다. 그 다음에 라. 이 고통들이 왜 오느냐. 이라는 때문에 오지 않겠느냐. 그래 이 집 때문에 고가 온다. 라. 를 싹 끊어서 뿌리를 뽑아버리면 고가 사라져버릴 것 아니냐. 고가 사라져 버리는 . 이것이 아니냐. 그러면 멸이 되기 해서는 고의 를 싹 뚝 끊어야 되겠는데 를 싹 지우는 길은 무엇이냐. 그것은 8정도다. 8정도 1번이 무엇이냐. 이다. 바로 정립이다. 이런 으로 4성제, 12영기, 8정도를 좌악 합니다. 그런 으로 마치면 빨리 하면 30분, 천천히 하면 1 걸립니다. 한 에 4성제, , 8정도를 쭈욱 해 가는 재미가 보통 좋은 것이 아니고 그 가 내 속에서 명료해져 가면 8만 대장경 모르더라도 인으로서 당당해 집니다. 이렇게 정립이 수행에 있어서는 첫 스텝입니다. 왜? 이 은 바로 가르침이니까. 가르침이 내 속에 되어져야 할 것 아닙니까?

두 번째 입니다 이 정립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깨달음이 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것은 하나의 깨달음 입니다. 입니다. 깨달음을 가장 소박하게 이야기 하면 입니다. 과 지혜 이야기를 했지요? 그것과도 대비될 수 있습니다. 먼저 정립이 되려면 가 있어요. 그것을 가만히 음미하면 과연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면서 지혜 로 내 속에서 자리를 딱 잡게 됩니다. 지혜 로 이미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깨달음이 내 속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깨달음을 합니다. 거듭 합니다. 수행하는 겁니다. 수행. 행을 하다가 보면 내 속에 이 담고 있는 물이 있어요. 그 물은 어떻게 옵니까? 어떤 큰 자유감으로 옵니다. 같은 으로 이지 않느냐. 이지 않느냐, 하고 합니다. 이런 이 확연해지면 내 속에서 이 몸에 익어들면서 오는 물이 무엇으로 오느냐 하면 감으로 옵니다. 감. 그래서 그 자유로와지는 그 기쁨을 이라고 합니다. 로 마음이 확 열려지는 체험이 입니다.

세 번째 입니다. 정립이 확연하고 문득문득 이 되는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게 됩니다. 일상생활을 할 때 이 적용되어 자유로움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과 내 이 일원화됩니다. 이것을 이라고 합요. 을 정립하고 그것을 거듭 하니까 중에는 완전히 으로 마음이 열려서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 을 체험하게 되는고, 할 로 좋습니다. 이것이 입니다. 그러면 속에는 입니다. 에 부딪치면 온전히 이 살아집니까, 아니면 살아지지 못합니까? 어렵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입니다. 구나겠지감사 을 할 때는 해 버린 것 같은데 에서 “이놈아!” 하니까 이 팍 상해버린단 말입니다. 이것은 이 아직 부족하다는 걸 의미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익어지다 보면, 첫 째, 둘 째 가 익어지다 보면 속에서도 문득문득 적용되어서 “이놈아!” 하더라도 걸려들지 않고 “으흠~, 으흠~ 나한테 이놈아~ 하는구나. 뭐, 이놈아 할 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저러 저러한 사정이 있을 수도…” 하면서 가 다 되기 때문에 에서도 이 됩니다. 속의 활용 에서도 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입니다. 그래서 여러들이 를 하면서 를 듣고 할 때는 정립이 되고 이 막 경험이 된 것 같은데 에 가면 또 걸려가지고 아웅다웅 하는 식이지 않습니까. 이러면서 점점 이 되가는 것이 느껴질 겁니다. 이쯤되면 훌륭한 수행자지요.

그런데 수행완료는 이정도로 滿할 수가 없습니다. 한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네 번째 입니다. . 꿈속에서 “이놈아!” 한다 해도 저절로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자현미경으로 을 찍어봤더니 탐.진.치 찌꺼기가 하나도 안 보이는 것이 입니다. 이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까지 욕심을 낼 일이 아니고, 정립을 열심히 해서 만 하게 되면 3 과 4 은 점점점점 더 적응이 되어서 3 4 가 더 올라가게 됩니다. 너무 심하게 매달리면서 “도대체 내 은 어느 됐을까요. 어느 됐을까요?” 이렇게 신경 쓰고 야단스레 굴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은 그냥 그렇게 하면 되간다고 믿고 할 일은 무엇이지요? 정립 선명히 했는가 보고 그것을 속에서 늘 경험하는 것. 이것이면 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 점점 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이 안될 때는 내 길이 아직 멀었구나, 더 하라는 뜻이구나 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중에서 을 늘 경험해 가십시오. 그래서 이 1번과 2 이 현실으로 할 일 라고 볼 수가 있어요. 그러고 에서는 조금 깨어있으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내 은 점점점점 자유로워져서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이 사라져갑니다. 그래서 아, 10 만 해도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먹구름이 막 끼여 있는 것 같았는데 은 내 권에 먹구름이 없단 말이야, 이런 식이 됩니다. 그것은 이 그만큼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를 동심원 4개로 그려서 정립부터, 그 다음에 , 그 다음에 , 순으로 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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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가 비슷합니다. 를 먼저 해 놓고 와 이어봅시다. 여러 들이 을 하려면 그냥 있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냥 깨어 있음. 깨어 있는 , 정확하게 말하면 깨어있는 만을 하고 있는 을 경험할 수 있어야 되요. 그렇게 깨어 있는 을 딱 하고 있는 을 옴이라고 합니다. 의 1번은 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방식 중에 가장 순수한 가 옴입니다. 옴은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그냥 있는 것이고, 그냥 있는 것의 다른 이름이 그냥 깨어있음입니다. 그냥 깨어있음 이라고 하는 이 옴의 는 감각도 허용이 안 됩니다. 에서 감각이 배제된 상태입니다. 그런 가 현실으로 한가 아닌가를 논하지 말고, 으로 하게 여겨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감각이 허용되지 않는 상태로 있어 보아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옴입니다. 그런데 현실으로 감각이 허용되지 않는 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감각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왜? 불가능한데 어떻게 불가능한 것을 계속하라고 하겠습니까?

이제는 감각을 살짝 허용해 보세요, 하는 것이 옴나입니다. 감각을 살짝 허용하게 되면 감각이 들어옵니다. 그러나 화는 하지 않습니다. 깨어있는 상태로 있되, 감각도 허용되기 때문에 감각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아도 됩니다. 옴을 할 때 감각이 막 들어옵니다. 감각 안 될 수가 없어요. 이 감각을 어떻게 피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제 옴나에서는 들어오는 것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들어오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화만 안하면 된다는 겁니다. 가장 순수한 것, 으로 가장 순수한 것은 옴입니다. 그러나 로 옴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옴나를 허용해서 옴나로 있게 되면 滿해도 됩니다. 옴나로 있으면서 이 허용되지 않는 상태로 이렇게 감각을 적당히 흘리면 수동성구나가 됩니다. 아까 옴이 가장 순수하다고 했는데 옴나도 이 허용되지 않는 이기 때문에 순수에 있어서 옴하고 똑 같습니다. 그러고 이것이 더 현실적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어요. 현실으로 엄정한 옴은 경험이 안 됩니다. 어렵다고 보면 됩니다. 100% 안되느냐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내가 처음에 옴 체험을 딱 했을 때는 히 100% 라는 감이 있었어요. 그 뒤로 나도 또 놓치고 또 놓치면서 옴나로 하고 있고 하는 세월이 늘 있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한 내가 그 에 이렇게 뒤뚱거리고 할 때야 사람들에게 옴을 하게 요구한다는 것은 히 무리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옴나를 개발해서 옴나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 나도 편해졌습니다.

마지막에는 걸림 없는 삶이한 것이지 엄정하게 옴이 되느냐 안 되느냐 이것은 한 것이 아니거든요. 옴이 엄정하게 되느냐 안 되느냐, 옴나가 엄정하게 되느냐 안 되느냐의 마지막에 걸림 없는 자유로운 삶이 있으면 그것이 묘각인 것이고 그것이 깨달음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에 있어서 어떤 체험이 되냐 안 되냐를 심하게 논하지를 마십시오. 적당히 옴을 중심으로 해서 옴이 체험된 것 같으면 를 쳐주시고 옴나는 또 이것보다 훨씬 쉬운 것이기 때문에 되면 또 쳐주십시오. 그래서 옴 내지 옴나가 권에서 체험이 된다고 하면 훌륭한 거예요. 왜? 내 앞에 감각 가 한정없이 열려져 있는데 그 감각세계에 해서 화하지 않고 걸림없이 이렇게 그냥 이러고 있을 수만 있으니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그 다음에 세 번 째로는 중에서 제 에 해당이 되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화하지 않고 있으려고 할 때에 문득문득 방해하는 훼방꾼이 생기게 됩니다. 그것이 뭐지요? 바로 나입니다. 나. 그래서 합니다. 내가 하다. 이것은 나를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또 방훼꾼이 무엇이지요? 내 눈에 보이는 것들, 내 귀에 들려오는 것들이 방훼꾼입니다. 완전히 로 마음이 고요히 허공처럼 있으려고 하는데 내 가 꿈틀거리면서 그걸 흔들어버리고 밖에 눈의 , 소리의 되는 것들이 나를 방해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안팎으로 를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안으로 하면서 를 딱 쓸어 보십시오. 나라는 것이 없지 않느냐. 없지 않느냐, 없지 않느냐가 익어 들수록 나 쪽으로 가는 에너지가 쉬게 되는 것이 문득문득 느껴지고, 점점 더 느껴지고, 더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 확연히 느껴져야 이렇게 살아갈 때 나 쪽의 에너지가 없어요. 나 쪽에 무엇인가 마음 써야 되는 에너지가 없다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그래서 세 번 째 입니다.

네 번째, 도 마찬가집니다. 밖의 것에 신경이 너무나 쓰여. 밖의 것에 집착이 돼. 그것도 얼마나 便 해요. 그런데 4 위로 이 되면 밖의 것에 가던 신경이 딱딱 잘라져버립니다. 그러고는 쉬게 됩니다. 이렇게 되었고 이 되면 하루하루가, 순간이 어떤 식이 되겠습니까? 드디어 걸림 없는 삶이 됩니다. 이러한 토대가 튼실하게 되면 그 로서 5위의 걸림 없는 삶이 살아집니다.

걸림 없는 삶. 이것이 입니다. 걸림 없는 삶을 살자고 여러 가지 장치를 쓰는 것입니다. 옴이라고 하는 장치를 하고, 옴나라는 장치를 쓰고 이라는 장치, 이라는 장치. 여러 깨달음의 장치는 깨달음 이기 때문에 그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장치를 해서 내가 자유로워지자고, 걸림 없는 삶을 살자고 그것들이 방편으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들이 무슨 , 이런 것들을 시하면 안 되요. 시하면 나의 자유 여하와는 상관없이 라고 하는 어떤 금자탑을 세워놓아야 될 것입니다. 나의 행, 불행과는 상관없는 라고 하는 것을 의 전당에다가 탁~ 세워놓아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 세워놓고 나는 무엇 하려고 영원히 여기에서 일하고 꺼벙하게 살고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은 방편이지 화되어진, 화석화된 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6 번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5위로만 했어요. 그러다가 하나를 더 붙였습니다. 내가 경계에 걸렸단 말입니다. 어떻게 딱 걸렸어요. 그런데 걸리기는 했으나 바로 빠져나와서 마음속에 흔적이 하나도 안 남아. 이 새끼야! 하는데 딱 걸렸지만 내가 다시 을 싹 차렸습니다. 그런 다음에 내 마음을 찍어보니까 이 새끼야, 한 것에 한 흔적이 내 마음에 전혀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흔적이 전혀 없다면 여러 들 느낌에 어떻습니까? 아. 이지요. 야, 이 새끼야, 하고 화도 한 냈어. 그런데 딱 돌아서면서 다 잊어버렸어. 을 찍어보니까 (21 말에는 그런 도 나온다고 그랬지요? 앞으로는 인지 아닌지 그 나오면 다 들켜버린다고) 흔적이 하나도 없거든. 그러면 악쓰고 이러고 저러고 수작은 좀 떨었다고 하더라도 흔적만 없다고 하면 그 사람 쳐주어도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걸림 없는 삶이냐, 아니냐를 너무 다투면서 떨 것 같아서, 네가 걸리냐 아니냐 하는 것이 가 아니고 흔적이라도 없으면 됩니다. 그래서 흔적 없는 삶이면 너를 이라고 을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놓고 누가 좋았는지 아세요? 내가 좋았어요. 뭔가 숨통이 좀 열려요. 흔적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화를 냈어요. 야, 원경, 너 어째 저째~~~~~~~~~! 그리고는 아이고, 아이고. 또 화를 내냐… 이렇게 후회를 하고 막 그럴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내 속에서는 딱 돌아서면 아무렇지 않거든. 이때 을 딱 찍어봤더니 흔적이 하나도 안 남아 있어. 그럼 아까 화냈던 것은 괜찮아요. 노 프러블럼입니다. 욕먹은 사람이 목만 안 달았으면 됩니다. 뭐,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흔적 없는 삶이라고 를 해놓으니 내가 숨통이 트여서 깊은 이 되더라니까요.

이상이 입니다. 그러면 와 연결해서 한 생각해 봅시다. 옴, 옴나, , . 이 모든 것들이 정립입니다. 이 을 거듭 을 하다 보니 내 속에서 자유감이 느껴지고 걸림 없는 삶을 이렇게 살게 됩니다. 그럼 이 걸림 없는 삶이 속에서 살아질 때는 이것이 쪽에 들어가고 중에 된다면 쪽에 들어가게 됩니다. 흔적 없는 삶, 이것도 마찬가지로 속에서 흔적 없는 삶을 살면 되고, 또 흔적 없는 삶도 로 연결이 되는 식입니다. 그러면 은 여기서 무엇이라고 해놓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의 삶을 살다보면 내 까지도 끝내 되어질 것 아닌가 하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 을 얘기할 때에는 수행 4위 쪽이 좋고, 고급과정에서 을 논할 때는 로 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고 이 두 가지 것은 거의 가 비슷하게 배대되기 때문에 함께 엮어 보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으로 살짝 해보면서 으로 여러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1번으로 에서 볼 때 날카로운 정립을 잘 해야 되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나는 정립이라는 에서 무슨 정립을 해왔지? 어떤 정립이 되어있지? 하면서 좀 스스로 물어보세요. 어떤 정립이 되어 있어요? 인이라면 이 아주 좋습니다. 은 이론 버전입니다. 그럼 버전으로는 무엇이 좋아요? 가 좋습니다. 그러니까 또는 5대 와 같은 이 얼마나 선명하게 정립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속에서 얼마나 해가지고 내가 을 얼마나 살고 있느냐, 이런 으로 를 돌아보는 으로 좋지 않습니까? 그러고 파지를 하신 분이든지 아니면 도전해가고 있는 들은 에서 한 를 점검해 보십시오. 내가 그냥 깨어있음, 옴으로 얼마나 순수하게 깨어 있느냐. 감각은 허용하되 화하지 않는 수동성구나, 옴나 체험은 얼마나 되어 있느냐, 이런 으로 말입니다. 거기에다가 플러스 알파로 , 이 내 속에 어느 감으로 오느냐. , 하면서 를 딱 쓸어버리면서 딱 이렇게 깨어있을 때의 그 인 자유감이 어떠 하냐. 그래서 내가 일상사 속에서 걸림 없는 삶을 얼마나 살고 있느냐. 그런 으로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치고 받고 싸웠더라도 뒤끝이 깨끗해서 을 찍어 보아도 흔적은 없을 것 같아, 그런 의 생각도 해보고 경험도 해보고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여러들 어때요? 흔적 없는 삶. 기막힌 발상 아닙니까? 나는 내 스스로에게 참 잘했다고 그랬어요. 걸림 없는 삶이라고 하면 무엇인가 삶을 폐쇄시켜 버린 감이 있잖아요? 그런데 살다가 보면 이라도 화가 납니다. 우리 큰스님도 언듯하면 화를 내셨어요. 또 우리 큰스님만이 아닙니다. 내 에는 큰스님이라고 하는 사람일수록 화를 많이 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어떻게 통과시킬 것인가 볼 때 5번 잣대만 만들어 놓았다면모두 이 아닌 겁니다. 그거, 큰일 아닙니까? 그런데 딱 을 찍어보니까 흔적은 깨끗이 없어. 입니다. 흔적 없는 삶.

자, 이 두 개를 엮어서 이 을 가졌습니다.

여러들의 삶에 오늘의 이 거리가 도움 되시길 빌면서….

합니다.